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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Book, Film, Game, and Media

[곡성]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이야기

by 브로페 2016. 6. 7.


원래 공포영화를 잘 보지 못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본 공포영화가... 2003년에 개봉한 여고괴담 3: 여우계단이었을 정도니까. 간간이 공포영화를 보기는 봤다. 그래도, 그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를 보는 상상을 하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깜짝깜짝 놀래키는 소리와 영상, 정말 별로였다.

몇 주 전, 곡성이 개봉했다. 20세기 폭스가 배급했다길래, "오 뭐 엄청나게 무섭나보지? 그럼 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눈도 닫고 귀도 닫았다. 그런데 이 영화, 심상치 않았다. 연일 늘어나는 관중수와 인터넷에서 떠도는 무시무시한 스포일러들 때문에 온통 곡성으로 난리였다. 곡성 군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고 하니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온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걸까? 안 보겠다고, 안 보겠다고 굳게 다짐해도 내 손가락은 이미 CGV 앱을 찾아 곡성을 예매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꽤나 잘 만들어진 공포 영화다. 잘 놀래켜서가 아니라, 잘 무섭게 만들어서라고 하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텐데, 아마 영화를 본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대충 알 거다. 잘 무섭게 하는 영화, 진짜 현실 속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영화가 그런 영화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공포영화들, 특히 서양의 공포영화들을 보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악역은 대부분 악마를 모티브로 한다. 히어로 영화와는 다르게, 그들은 항상 절대악으로 그려진다. 이 절대악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엑소시스트』에서는 악마가 대놓고 신부를 욕하고 벌하며, B급이긴 하지만 『블레어 위치』 같은 영화에서는 등장도 하지 않으면서 주인공 일행을 아예 몰살시켜버린다. 내가 대놓고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영화 초장부터 악마란 놈이 튀어나와서 이리저리 설치면서 죽지도 않는다!

곡성도 공포영화기에 귀신으로 대표되는 악역이 등장한다. 문제는, 영화 마지막의 진짜 마지막까지 갈 수록 누가 악역인지 모르게 만들어버리는 영화의 미로가 너무 어렵다는 것. 그 떄문에 이 영화를 공포가 아니라 스릴러 장르로 보기도 한다(물론 나만 그렇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서서히 악역이 누구인지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러면서 감독을 비웃는다. "이렇게 뻔한 스토리로 몰고 가다니, 한국 영화가 거기서 거기지 뭐."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당신은 머리를 부여잡고 나오게 될 것이다. 진정 나홍진 감독은, '뭣히 중헌지' 아는 감독같다. 

게다가 공포영화 주제에 교훈도 준다. 한 마디로 하자면,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 나오는 무디 교수의 명대사와 같다. "Constant Vigilance!" 현실 속에서 이런 이상한 일이 정말 현실처럼 다가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의심하는 일밖에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의심의 결과를 감독은, 영화에서 한껏 비틀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곡성』은 상당히 많은 내용들을 모티브로 한다. 이를테면, 한국의 무속신앙과 서양의 카톨릭 신앙을 합친 듯한 느낌이랄까. 그와 관련된 복선들을 하나씩 찾아보면서 영화를 즐긴다면 꽤 흥미진진한 영화가 될 것이다. 아, 그리고 영화 속 곡성의 풍경은 꽤 수려하다. 공포영화에 쓸데없는 영상미를 넣었다고 해야 하나? 영화를 보고 곡성 군수의 글을 본다면, 글쎼, 나는 일단 곡성군에 가보고 싶어지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