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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Book, Film, Game, and Media

[부산행] 좀비나 인간이나

by 브로페 2016. 9. 25.


좀비영화에 빠지게 된 계기는 아마 「28일 후」였던 것 같다. 좀비영화의 기본, 클리셰, 이런 건 잘 모르겠고, 박진감 넘치게 뛰어다니는 좀비, 어떻게든 거기서 살아남으려는 인간들, 그 모습이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너무나 현실적이기 때문에 더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좀비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으며, 간혹 「R.E.C.」같은 수작도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 영화계에서 좀비영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었었다.

「부산행」이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긋긴 했다. KTX라는 꽤 괜찮은 소재, 생각보다 정교해서 놀랐던 좀비 CG, 그리고 배우들의 괜찮은 연기라던지. 몇 가지 옥의 티를 빼면(그건 어느 영화에서든 있기 마련이니까) 부산행은 꽤 괜찮은 좀비영화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선 어느 정도 상영이 종료되었지만, 아시아 각지에서 부산행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로튼토마토에서도 신선도 93%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신파가 몰입을 해친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잠깐 집어넣어도 될 것 같다.

KTX를 엄청나게 자주 타는 입장에서, 영화 소재는 꽤 흥미로웠다. 폐쇄된 공간, 하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공간에서 사람들 또한 생존을 위해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칸과 칸, 그 중간의 화장실과 같은 폐쇄된 공간이 주는 더한 긴박감도 액션을 살리는 데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다. 중간중간 내리는 역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는 영화의 참신함을 더 살려준다. 항상 내리던 곳, 항상 창 밖으로 바라보는 익숙한 공간이 아비규환으로 변한다면, 그리고 그 창 안이 더 큰 생지옥이라면...?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좀비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좀비의 잔인한 행동을 통해 인간의 무자비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인간이 공포에 질렸을 때, 이성을 잃어버리고 나오는 본능은 다른 어떤 맹수들보다도 이기적이고 잔인하다. 그리고 한 겹 더 들어가면,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무자비하지 않을 때 오히려 주인공들은 더 큰 위험에 빠진다. 도대체 어쩌라는건지. 당장 친구, 가족, 지인이 좀비가 돼서 나한테 달려들면, 당신은 현실에서 진짜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있겠는가? 무자비하게 팰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