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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Book, Film, Game, and Media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편은 신중하게 들어라 (스포 O)

by 브로페 2016. 5. 2.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DC코믹스 이야기지만, 슈퍼맨은 절대선을 상징했고, 사실상 미국을 대표하는 히어로였기 때문에 1960년대, 특히 냉전 기간에 잘나가던 캐릭터였다. 냉전 시대의 미국은 항상 옳아야 했던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그 냉전이 끝나고 나서, 특히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면서, 히어로물에 선과 악의 절대적인 구분이 없어진다고 했다. 어떤 히어로도 절대선이 될 수 없고, 어떤 빌런들도 절대악이 될 수 없다는 그런 논조는 배트맨의 성찰에서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그 이후 나온 최근의 히어로물들(DC와 마블을 총망라한)에서의 악역들은 대부분 사연을 곁들이고 있다. 악역들은 히어로의 행동으로 인해 뭔가를 잃은 사람들이던지, 아니면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하다던지(대부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더라), 그리고 그도 아닌 악역들은 거의 드물었다. 마블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이드라 정도가 절대악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아이언맨1>의 오베디아는 그저 사업 더 키우려던 군수사업가였고, <아이언맨2>의 이반 반코는 하워드 스타크 떄문에 유배당한 자의 아들이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에서의 버키 반즈는 세뇌당한 슈퍼솔저였을 뿐이었다.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진 히어로물의 본질을 제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지 않나 싶다. 영화의 구도를 보면 크게 넷으로 나뉜다. 팀 아이언맨, 팀 캡틴 아메리카, 빌런 헬무트 제모, 그리고 UN이 그들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 여기서 선악을 구분해보라고 하면 아마 누가 제대로 구분할 수 있겠는가? 어벤저스 요원들은 그냥 자기 신념에 따라 행동한 사람들이고, UN이야 민간인이 대량으로 어벤저스 팀 떄문에 학살당한 상황을 넘어갈 수 없었던 거고, 메인 빌런인 헬무트 제모는 소코비아에서 가족들이 떼죽음당한 희생자였을 뿐이다. 사실상 이건 편들기 굉장히 어려운 내용이다.

그렇기에 이번 편에서 새롭게 등장한 히어로인 블랙 팬서(Black Panther)가 더욱 부각된다. 아버지를 잃은 복수심에 복면을 쓰고 활보하는 그는, 마지막 순간에 어느 한쪽 편에 서길 거부하는 동시에, 사연있는 악당을 처치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똑같이 아버지를 잃은 복수심에 불탄 아이언맨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다만, 모든 히어로들이 블랙 팬서처럼 이성적이었다면 영화는 훨씬 더 재미없고 고지식했을 것이다. 히어로물보다는 추리물이나 수사물이 되었겠지. 같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서로 다른 행보를 보여주는 여러 히어로들의 모습은 그래서 인상깊다.

부모님을 죽인 범인을 가만히 놔둘 수 없었던 아이언맨도 이해가 간다. 제정신이 아닌 친구를 변호하려는 캡틴 아메리카도 이해가 간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편을 들어야 한다면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 그럴 땐 공감가는 히어로 편에 서야지 뭐 어쩌겠나. 다만, 영화를 보면서 이 편 저 편에 모두 공감가서 내적 혼돈이 올 수도 있으니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