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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2016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DAY 0. 국경 마을에 도착하다

by 브로페 2017. 1. 15.


일시 2016년 7월 5일 (화)

여정 프랑스 파리(Paris) - 바욘(Bayonne) - 생장피에드포흐(Saint-Jean-Pied-de-Port)

도보거리 0km

숙소 Albergue Accueill Pelerin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길인 프랑스 길(Camino Frances)로 향하는 날이다. 드디어 떠난다고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계속 파리에 남아있고 싶은 귀찮음이 공존하는 새벽이다. 평소보다 두어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체크아웃을 빠르게 하고, 호스텔에서 나와 바욘으로 가는 TGV를 탈 수 있는 몽파르나스 역(Gare Montparnasse)으로 향했다. 그렇게 일찍 일어났음에도 도착예정시간이 열차 출발시간과 거의 겹쳐버려서, '혹시 놓치면 어쩌나' 하고 초조해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열차시간에 딱 맞춰서(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좀 더 여유 있게 도착하길 바란다) 플랫폼에 도착하고 말았고, 헐레벌떡 TGV 안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내 좌석이 있는 열차칸으로 정신없이 뛰어가는데, 나와 똑같이 배낭을 멘 독일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달려간다. 같은 순례자인가.

 기차 안은 놀랄 정도로 KTX와 비슷했다. 애초에 기술을 프랑스에서 가져와서 그런가, 화장실이나 짐칸 배치, 자동문 여닫는 구조가 맨날 타던 KTX와 다를게 없어보였다. 다만, 좌석배치는 4인 동반석을 주로 해서, 나는 한 프랑스인 대가족과 함께 앉게 되었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고, 창가자리라서 바깥 풍경을 볼 수도 없었다. 조용히 잠들 수밖에.

 5시간 정도를 달려 바욘 역에 도착했다. 바욘은 스페인 국경에 인접한 작은 도시로, 기차를 타고 생장으로 가고자 하는 순례자들이 필히 지나쳐야 할 곳이다. 이 곳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생장으로 가는 작은 열차로 갈아탈 수 있다. 시내를 잠깐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조금 부족했고, 그냥 기차역 안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순례자 몇몇이 기차역 주변을 서성인다. 

 생장으로 가는 기차표는 바욘 역에서 종이표로 따로 발급받아야 한다. 나는 TGV 예약할 때 한꺼번에 예약해서 발급만 받으면 됐지만, 하필이면 한국에서 예약해놓고 카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현지에서 취소하고 다시 발급받아야 했다. 결제 때 사용한 카드를 가져가지 없으면 매표소에서 발권도 환불도 안 해주니 주의하자. 카드가 없어 발권이 되지 않아 환불받지도 못할 때는 SNCF 앱으로 환불이 가능하지 떨지 말자. 소정의 취소 수수료가 붙기는 하지만, 통으로 날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지만 역시 제일 좋은 건 결제할 때 사용한 카드를 그대로 들고 가는 것이다. 

 어렵게 생장 역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작은 모노레일같은 열차인데, 인천공항 탑승동으로 향하는 전철같이 생겼다. 가는 데는 한시간 좀 덜 걸린 것 같은데, 여기로 향하는 사람들은 거진 전부 순례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누구하나 배낭이나 스틱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없다. 기차는 산골짜기를 유유히 지나치며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피에드포흐 마을로 향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산 엽서를 꺼내 열차 안에서 적는다. 

 생장피에드포흐에 도착하면 바로 마을의 메인 스트리트인 시타델 가(Rue de Citadelle)로 향한다. 마을이 그렇게 큰 건 아니어서, 사실 다른 순례자들 따라서 걷다보면 알아서 시타델 가에 도착하게 돼 있다. 성당이 작은 강 하나를 끼고 있는 곳인데, 이 곳에 순례자 사무소와 순례자 숙소가 몰려있다고 보면 된다. 빠르게 우체국에 들러 엽서들을 부치고, 행여나 순례자 숙소가 꽉 찰까 부리나케 시타델 가로 향한다.

 시타델 가에 도착하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숙소를 먼저 잡을 것인가, 순례자로 등록을 먼저 할 것인가? 만약 한국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지 않고 바로 프랑스에 왔다면, 순례자 사무소에 먼저 들러 여권을 발급받고 제반 정보를 듣는 것이 좋다. 어차피 순례자 숙소는 순례자 여권이 없으면 받아주지를 않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지금 숙소가 중헌게 아니다. 다행히 나는 한국에서 미리 여권을 발급받고 온 경우라, 순례자 사무소의 긴 줄을 피해 먼저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조금 허름해보이지만, 사무소 근처 숙소인 공립 순례자 알베르게(Albergue Accueil Pelerin)에 짐을 풀고 바로 순례자 사무소로 향했다.

 사무소로 향하면 일종의 웰컴팩(?)같은 걸 받고 순례에 대한 제반 사항들에 대해 교육받게 된다. 일단 순례자의 상징인 조가비를 받고, 프랑스길의 모든 숙소 정보가 담긴 종이도 받을 수 있다. 내일의 날씨 정보도 아주 유용한데, '나는 괜찮다'고 허투루 들으면 안 된다. 생장을 떠나는 일정은 모든 순례 일정 중 가장 험악한 일정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피레네 산맥의 날씨가 매우 괴팍해서 언제 비가 오고 언제 폭풍이 올 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반드시 현지인의 설명을 듣고, 혹여라도 날씨가 좋지 않다고 하는 경우 무리하게 입산하지는 말자. 순례 1일차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사무실에서 모든 설명을 듣고 나면 그 다음은 자유시간이다. 마을을 둘러봐도 좋고, 저녁에 있을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는 것도 좋다. 나는 숙소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독일인, 스코틀랜드인 친구와 함께 마을을 둘러보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자유시간동안 꼭 해야 하는 것 한가지: 내일 점심으로 먹을 식량을 사 놓는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베이커리에서 신선한 빵을 구할 수도 있지만, 그걸 귀찮아하는 사람들은 내일 길에서 먹을 점심을 꼭 사놓아야 한다. 나는 간단하게 식빵 한 봉지와 꿀 하나를 샀다. 아주 좋은 조합도, 매우 구린 조합도 아니다. 

이 곳에선 해가 꽤 늦게 지는데(물론 여름 얘기다), 그럴 땐 숙소 옆에 있는 시타델에 올라가보는 것도 좋다. 시타델은 과거에 성채가 있던 마을 옆 언덕인데, 생장피에드포흐 마을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혹여나 나같이 고프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촬영 스팟이기도 하다.

 이렇게 마을 구경까지 하고 나면 하루가 끝난다. 여름 순례는 새벽 일찍 출발해서 오후 일찍 끝내는 것이 제일 좋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라도 밤에는 일찍 잠들어야 한다. 해가 늦게까지 밝기 떄문에 생장에서부터 빨리 적응하는 게 좋다. 더불어, 숙소 상태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많이 뒤척일 수 있다. 내일의 컨디션을 위해 일찍 자 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