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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Daily Life

[전시회 후기] YOUTH: 청춘의 열병, 그 못다한 이야기

by 브로페 2017. 2. 9.



 전시회 오픈에 맞춰 방문하는 경험을 해보고자 오늘의 전시회는 「YOUTH: 청춘의 열병, 그 못다한 이야기」로 정했다. 입장권은 어제 티몬에서 구해놓았고, 카카오맵을 찾아보니 마침 집에서 한남동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디뮤지엄까지도 상당히 가까워서 조금 여유있게 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1시가 넘어서야 집에서 출발했다. 오늘 오픈하는 전시회여서 그 누구보다도 빨리 가고 싶었는데, 하여튼 이놈의 귀차니즘이 문제다.

 디뮤지엄에 도착하면 정체불명의 문장이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한다. "NDIEEI LLLEU AYOKS." 구글 번역기 돌려봐도 무슨 뜻인지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AYOKS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코사어로 '책'이란 뜻이라는데, 딱 거기까지만. 아마 '그 못다한 이야기' 이런 뜻이지 않을까 넘겨짚는다. 하필이면 아무도 모르는 코사어로 적어놓을 건 또 뭐람. 코사어가 맞기는 맞나?

 티몬에서 입장권을 구매한 경우, 현장에서 입장권을 받으려면 대림미술관 앱을 깔고 멤버십 가입을 먼저 해야 한다. 로그인해서 멤버십 바코드를 함께 보여주면 입장권 발급이 가능하니 미리미리 준비해가자. 프리랜서 디자이너 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로는 대림미술관이 전시쪽에서 굉장히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한다던데, 이왕 만든 멤버십 앞으로도 자주 갈 일이 많기만을 바랄 뿐이다. 

 전시회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부터 심상치가 않다. 어두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 색색이 네온등이 켜져있다. 배경으로 힙합 음악이 깔리는 게 무슨 파이트클럽 들어가는 느낌이다. 계단 앞에는 네 개의 서로 다른 네모난 표정들이 화난듯이 서로를 째려보는데, 유일하게 눈알을 굴릴 수 있는 표정은 한 명 뿐이다. 괜찮아, 3대1로 싸우려면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

 내부 인테리어를 그물모양 철조망으로 해놓았다. 어쩌면 억압받았던 청춘을 상징하는 그 철조망 위에 사진들이 걸려있고, 그 입구에는 뜻모를 문구 하나가 네온등으로 적혀있다. "내 새끼 니나 이쁘지." 내 새끼는 니나 이뻐한다는 말일까, 주부들 사이에 쓰인다는 '도치맘'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아니면 '니나'라는 내 자식이 예쁘지 않느냐, 는 자식 자랑으로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어떤 해석이 이번 전시회 컨셉과 맞는 의미일까? 혼란하다, 혼란해!

 노랗게 바랬는지 조명이 노래서 그런 건지 모를 어쨌든 노란 흑백사진은, 청춘이 우리 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음을 어필한다. 사진 속 사람들은 지금쯤 돌아가셨거나 머리가 하얗게 세버렸을 노인일텐데, 자세히 보면 저 사람, 스키니진을 입고 있다! 패션이 돌고 돈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그걸 직접 보는 것은 또다른 충격이다. 우리 할머니도 언젠가 스키니를 입었었을까, 안 그래도 요즘 나팔바지가 다시 유행이라던데. 아무튼 그랜마 스웩-

 저 혼종은 도대체 무엇인가. 머리는 스타트렉의 스팍을 닮았고, 자켓은 분명히 비틀즈의 그것인데, 거기다 선글라스를 매칭하니 마치 미미시스터즈의 조상이 된 것 같다. 키를 보면 분명히 어린아이들 같은데, 옷 입는 걸 보면 분명히 몇년 후에 대성할 스타일이긴 하다. 해외 잡지같은 데 뜨는 옷 잘입는 패셔니스타 할아버지들의 청춘은 저런 모습이었을까? 

 어우 쒸... 감사합니다... 뜬금없이 나온 여성의 나체 사진.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이번 「YOUTH: 청춘의 열병, 그 못다한 이야기」 전시회에 걸린 사진들에는 사실 몇가지 특징이 존재한다. 타투, 스케이트보드, 나체와 함께하는 섹슈얼한 일탈, 힙합 스웩, 장발 혹은 스킨헤드, 페션 센스, 자유로운 욕설, 마약일지도 모를 담배, 동성애, 반쯤 풀린 눈들이 그것이다. 청춘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컨셉이다. 

 전시회는 고상하고, 조용하며, 온화해야 한다는 그런 상식같은 건 여기에는 없다.  「YOUTH: 청춘의 열병, 그 못다한 이야기」는 어둡고, 시끄러우며, 시청각적으로 매우 자극적이다. 그래서 더더욱 꼰대들에게 추천하는 전시회이기도 하다. 그분들도 언젠가 누렸을 청춘의 모습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세상에 처음부터 꼰대마인드 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웃어넘기기엔 너무나 뼈아픈 말이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대립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엄마도 할머니한테 "나는 엄마에게 속았어요"라고 일갈했을수도 있고, 증조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내가 너를 어찌 키웠는데"라고 한탄했을 수도 있다. 현직 엄마분들께서 이걸 본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과연 저 두 문장 중에 어떤 것에 더 이입하게 될까?

 보통의 전시회에서는 영상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존재한다. 여기는 그런 거 없다. 사진들 사이에 영상을 끼워넣고, 바닥에, 벽에 자유롭게 영상을 투시한다. 당연히 영상을 편하게 보기 위한 앉을 공간도 없다. 거참, 청춘 아닌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전시구성이, 퍽 신선하다. 영상은 절대 길지 않다. 3~5분 정도로 서서 보기 좋은 영상들. 청춘은 점점 빠르고 자극적인 영상을 찾는다. "나는 엄마에게 속았어요"를 지나가면 나오는 꽤 오래된 영상미를 가진 힙합 노래, 융 린(Yung Lean)이라는 벨라루스 래퍼의 Hurt라는 곡이다. 

 패션 잡지에서 볼 법한 사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흑백사진을 넘어 컬러사진이 등장한 걸 보니 이제부터는 우리 세대의 청춘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다양한 패션 역시 청춘의 일부이고, 그 사이사이에 나체와, 타투와, 힙합이 녹아들어가있다. 괜찮아, 그래도 이 정도면 전시회 사진 중에서는 꽤 양호한 편이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테마로, 아니 어쩌면 '섹스'라는 테마로 묶였을지도 모를 사진들. 3열 3행에 있는 사진이 퍽 AV를 떠올리게 한다. 자유분방한 성문화를 상징하는 여러 사진들. 사실 그 성문화라는 것도 세대를 지나면서 점점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한국인들이 저런 사진 찍어다가 전시회하면 아마 미술관 입구에 누군가가 warning.or.kr 딱지를 붙이지 않을까? 전시회를 보면 알겠지만 이 정도 수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구도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듯한 흑형의 나이키 스웩- 저것도 한때의 유행이었다고 생각하니 뭔가 재밌다. 찍어주는 사람은 바짝 엎드려서 찍었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타이머를 맞춰놓으면 편하잖아. 잠깐, 저 시대에 타이머가 있었나? 뭐야, 원본이 흑백사진이야? 도대체 언제적 사진이야 그럼? 분명히 스타일은 컬러사진이 대중화되고 나서인 것 같은데. 

 오늘의 마지막 네온글귀가 내 양심을 사정없이 찔러댄다. "시발놈 착한척 하기는." 그래, 나는 너무 착하게만 살아왔다. 그래도 항변할 거리는 있다. 나는 이게 옳은 삶인 줄 알고 지난 20여 년을 살아왔다. 단정하게 입고, 머리는 깔끔하게. 문신같은 거 하면 양아치 아냐? 힙합은 무슨, 너저분해라. 같은 말들이 내 인생을 세뇌시켰었다. 착하게 사는 게 나쁜 건 아닌데, 사람 마음 속 깊은 곳에 억눌려온 그 무언가를 계속 눌러놓으면서 살만큼 인생이 옳아야 하는 것일까? 그래, 나는 시발놈이다, 시발놈!

스케이트보드 역시 전시회의 주요 소재로 나타난다. 특이한 것은, 스케이트보드에 바퀴가 없다는 것. 나중에 기념품샵까지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 스케이트보드 자체가 하나의 캔버스 역할을 한다. 내 마음대로 디자인하고, 내 마음대로 고쳐 그릴 수 있는, 스케이트보드는 그 자체로 청춘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지하 전시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케이트보드로 가득 차있다.

 1층 전시장은 그나마 조금 정갈하다. 여기까지 힙합스웩 넘치게 디자인했으면 비용이 많이 들었을까? 그나마 정갈한 사진들이 벽을 메우고 있다. 여기는 그나마 덜 섹슈얼한, 진짜 '청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위에는 혁오의 미발표곡 「tomboy」의 가사가 적혀있다. 늙어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점점 사그라드는 청춘의 시간,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사랑을 응원한다는데 죽어있던 연애세포가 꿈틀거린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전부 아름답게 보인다. 인스타에 올라오는 그깟 설정샷들보다.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당연히 2층에 와서 좀 덜 야하다...라고 생각했는데, 항상 마지막 순간에 클라이막스가 있다. 인종 가릴 것 없이 찍은 누드사진이 온 사방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엄청나게 숭고한 뜻이 숨어있다기보단, 오히려 이해하기 쉽다. 다양성의 가치. 그것이 지하1층에 있는 그 모든 특징들을 아우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외치는 것 같다. 백인, 흑인, 황인, 스킨헤드, 레게, 금발, 흑발, 타투, 여자, 남자. 모든 다양성이 오히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누드사진으로 모여있다. 

 그런가하면 오히려 청춘의 순수함을 역설하는 사진도 있다. 마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나체로 돌아다니는 청춘의 모습. 아무것도 모르는 청춘이 오히려 더욱 때묻지 않고 순수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하나같이 수위가 높은 사진들이지만, 그렇다고 나를 짐승같이 흥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외설과 예술의 차이가 이런 것일까?

 기념품샵에는 생각보다 살 만한 것들이 많지는 않다. 자유로운 청춘의 지갑을 의식한 듯 저가의 소소한 상품들이 많지만, 내게 확 끌리는 굿즈는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이색적인 엽서와 스티커, 그리고 작은 노트가 우리를 부담스럽지 않게 하는 착한 가격의 제품들이다. 쌍둥이 미술관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진행중인 「닉 나이트 사진전」 관련 상품들도 조금 준비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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