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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후기] 거침없는 여류화가의 생애, "타마라 렘피카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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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후기] 거침없는 여류화가의 생애, "타마라 렘피카전"

브로+페는 브로페 2017. 2. 24. 14:58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 구스타프 클림트, 닉 나이트, 포르나세티, 수많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이번 달에 많은 전시회를 다녔지만 그 중에 여성 작가를 대상으로 한 전시회는 없었다. 사실 앞으로 계획된 일정에서도 여성 작가의 전시회는 없을 것 같다. 데이비드 라샤펠, 알폰스 무하, 다빈치까지, 이 남성 위주의 전시회에 초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여류화가의 전시회가 존재한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볼 수 있는 「타마라 렘피카전」에서 드디어 만난, 아르데코의 여왕, 타마라 렘피카.

 입장하기 전에 알아둬야 할 상식 하나: 아르데코(Art Deco)란 무엇인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아르누보(Art Neuveau)와는 확연히 다른 이 기풍은, 현대 산업의 실용미를 포용한 예술양식이다. 곡선과 자연 위주의 아르누보가 공업사회의 직선미, 실용미와 타협하면서 생겨난 화풍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그림을 배운 타마라 렘피카(Tamara de Lempicka)는 이 아르데코 화풍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스페인의 초현실주의자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도 당당히 대면하고 있는 사진을 보면, 왜 그녀를 여왕이라 일컫는지 알 것 같다. 마치 당시의 신(新)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저 사진만 보자면 오히려 살바도르 달리가 타마라 렘피카에게 경의를 표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누가 갑이고 을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동시대에 남자 예술가와 동등하게 대화하는 사진 한장이 전시회 초입부터 우리를 압도한다.

 그녀의 화풍은 아르데코 뿐만 아니라 입체파(cubism)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파블로 피카소를 떠올리면 쉬울텐데, 그의 작품만큼 타마라 렘피카의 작품이 파편화된 큐비즘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다만 그녀의 그림은 아주 심플해졌다. 색의 처리도 간결하고, 선처리도 비교적 직설적으로 표현해냈다.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간결하게 그려내는 타마라 렘피카만의 화풍이 극대화되는 작품이 바로 녹색 부가티를 탄 렘피카 본인의 "자화상"이다. 전시회 포스터로도 쓰인 이 작품을 잘 보자. 표정은 어떤 여성보다도 중성적이고, 선을 올곧으며, 색은 단순하다. 

 물론 평생 이런 식의 화풍을 유지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삶에 굴곡이 질 수록, 기존의 화풍과는 다른 느낌의 그림을 그려냈고, 한동안 그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이 예전같지 않다고, 예전만 못하다고 말이다. 그림은 그녀의 삶을 따라 점점 추상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인생 말년에 다시 원래의 명성을 되찾은 타마라 렘피카. 사실 어떤 그림인지, 원래와 다른 화풍인지 뭔지 알게 뭔가. 그녀의 삶이 그대로 녹아들어간 화풍을 가진 작품들은, 그녀가 죽고 난 뒤에는 하나하나가 전부 가치있는 그림이 되었다. 

 삶의 짙은 굴곡을 이겨내고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나간 타마라 렘피카의 작품들. 전시회 벽에서 본 한 글귀가 눈에 띈다. 어쩌면 아르데코보다, 큐비즘보다, 그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그래서 이번 「타마라 렘피카전」은, 그녀 작품의 행적보다 그 삶 자체를 쭉 둘러보는 기분이 드는 묘한 전시회가 된다.


나는 사회의 한계점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그 한계점에서는 정상적인 사회의 규칙들이 통하지 않죠.
"I live in the margins of society. And the rules of normal society don't apply in the marg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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