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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후기] 예술로써의 그래피티를 만나다, "위대한 낙서"

브로+페는 브로페 2017. 2. 23. 17:00


 쓱싹쓱싹, 치이이익! 예술과 범죄의 아슬아슬한 선을 과감하게 넘나드는 이 행위를 우리는 그래피티(graffiti)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어로 '낙서'라는 뜻을 가진 단어 그래피티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캔버스를 강제로 제공하게 된 건물주에게는 범죄가 될 수도 있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 무려 '예술의 전당'에서 그래피티를 선보인다고 한다! 이름만 들으면 왠지 고상하기 그지없을 것 같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위대한 낙서」 전시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전시회는 예술로서의 그래피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티몬에서 구매할 수 있는 해피아워 입장권을 통해 더욱 저렴하게 가볼 수 있었던 이번 전시회.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으로 향하면 양쪽 벽면에 커다랗게 전시된 두 장의 그래피티가 우리를 맞이한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유독 많다. 생각해보니 다른 미술 전시회보다는 아이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올 만한 전시회인 것 같네. 전시회는 일곱 명의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섹션별로 나누어 다룬다. 당연하게도 우리에게는 전혀 친숙하지 못한 이름들이다. 

 그런데 첫 섹션부터 뭔가 예사롭지가 않다. 좁은 입구에 걸린, 줄줄 흘러내리는 구글 로고부터 거대한 벽에서 온통 무너지고 있는 루이비통 로고까지. 이 섹션은 제우스(ZEVS)라는 프랑스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위한 공간이다. 그의 주특기는 초장부터 강렬하게 인식된 '흘러내리기' 스킬이다. 아마도 닉 나이트 사진전에서 본 흘러내리는 꽃들과 의미가 비슷할테다. 영속할 것 같은 기업의 로고를 흘러내리게 만들어서 통렬히 비판하는, '너희가 영원히 갈 것 같지? 천만에!'라고 코웃음치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물의 그림자를 그래피티로 따놓는 퍼포먼스 역시 제우스만이 보여주는 예술이다. 한밤중에 생기는 가로등의 그림자는 당연하게도 전기 불빛에 의해 생긴다. 이를 흰 스프레이로 (마치 살인사건 현장감식같이) 그려놓는 행위를 통해 햇빛이 드는 한낯에도 '전기 그림자'를 영속시키는 것. 밤의 기억을 되살려내는 굉장히 독창적인 방법이다. LG전자 가전사업부와 협업한 '전기 그림자'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있다. 

그 다음 섹션은 제이알(JR)이라는일본철도회사말고 프랑스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이 사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래피티와는 약간 다른 방식의 그래피티를 선호한다. 직접 무언가를 그리기보다는, 사진을 찍고 출력해서 자기가 원하는 곳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낙서를 하는 이 방식은 상당히 흥미롭다. 예를 들자면, 파리의 한 부촌의 건물 벽면에다 빈민가 아이들의 사진을 걸어두는 것이다.  스프레이 없는 그래피티라니!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색소통 대신 카메라를 쥔 그의 그래피티는 그래서 더욱 신선하다. 

 닉 워커(Nick Walker)의 섹션으로 들어서면 그래도 조금 우리가 생각하던 그래피티같은 그림이 보인다. 그런데 그림중에 전혀 그래피티같지 않은, 스프레이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을 것 같은 작품들이 많다. 이는 닉 워커의 그래피티가 스텐실 기법을 기반으로 하기 떄문이다. 스텐실을 이용한 정교한 작품은 오히려 그래피티를 그래피티같지 않게 보이게 한다. 그냥 붓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겠다.

 그나마 제일 우리가 아는 그래피티다운 작품들이 크래쉬(CRASH)라는 미국 아티스트의 섹션에서 보인다. 그의 그래피티는 '기성사회와 거리의 삶을 연결시켜주는 시각적 매체'로 기능한다. 그런 만큼 작품에 사회적 메시지가 많이 들어갔다고 보아야 할 텐데, 음...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의 메시지라. 그건 조금 어렵다. 쌍제이(J.J.에이브람스 영화감독)의 시그니처이기도 한 렌즈 플레어가 크래쉬의 여러 작품 안에 녹아들어가 있다. 어쩌면 크래쉬는 우리가 아는 가장 전형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아닐지.

 라틀라스(L'Atlas)의 작품은 전혀 그래피티같지 않다. 글자도, 사진도 없다. 그냥 기하학적 패턴이 반복되는, 미궁같은 패턴만 이리저리 펼쳐져 있을 뿐. 저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직관적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라틀라스에 대해 조금 검색해보면 저 작품이 사실은 글자(캘리그래피)를 추상화시킨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래도 저것이 무슨 뜻인지 알 길은 요원하다. 한국 하수도 뚜껑을 따온 작품이 인상깊다. 우리나라 하수도 뚜껑이 저렇게 괜찮은 디자인이었나...?

존원(JonOne)이라는 미국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라틀라스와는 완전히 다른 추상을 선보인다. 뭔가 글씨같은 것이 보이는 작품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색을 흩뿌린 듯한 혼란스러운(또는 역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존원이 직접 전시장에 와서 만들어낸 그래피티 작품이 크게 걸려있다. 바닥에는 빈 깡통들이 널려있는 이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무질서와 자유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위대한 낙서」가 열리기 전, 존원과 윤종신이 콜라보해서 만든 "The First"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볼 수도 있다. 

 셰퍼드 페어리(Shephard Fairey)는 아마도 오늘의 모든 전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을 만든 그래피티 아티스트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방금 전 존원의 작품과는 또 완벽하게 다르다. 어찌보면 제이알과 비슷할 수도 있어보이는 그의 작품은 벽화라기보단 차라리 한 편의 포스터에 가깝다. 사회적 메시지를 대놓고 강하게 던지는 셰퍼드 페어리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전시관 출구 앞에 걸려있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일 것이다. 타임지에 실린 사진이 이것이었다니, 왜 그의 섹션이 제일 마지막에 위치해있는지 알 것 같다.

출구 앞에는 아이들이 직접 낙서를 경험해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거창한 그래피티는 아니고, 이것저것 쓱싹쓱싹 그려서 한쪽 벽에다 길게 붙여놓는 방식인데, 보다보면 참 창의적인 낙서들이 많다. 이게 어린아이들의 작품인지 놀라운 것들도 있다(아마도 어른들이 해놓은 것들이겠지). 


3층으로 올라가면 전시관이 하나 더 있는데, 이곳은 아티스트 JR의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를 위한 공간이다. 전세계 사람들의 사진을 예술로 풀어낸다는 이 프로젝트의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남녀노소를 불문한 한국 사람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붙여져 있다. JR이 2011년 TED 강연에서 수상하고 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이 프로젝트의 이야기는, 전시장 입구 바로 옆에서 TED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피티는 누군가에게는 범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의 전당 「위대한 낙서」에서는, 그래피티는 단순한 낙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그래피티, 다양한 기법으로 창의적 작품이 되는 그래피티, 그림이 아닌 그래피티, 아무 의미 없어보이는 그래피티. 오히려 내 자신에게 반문한다. "무엇이 그래피티고, 무엇이 낙서이며, 무엇이 예술인가? 예술과 범죄와, 그래피티와 낙서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오늘도 근본적인 질문만 묻고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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