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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페의 하루/전시회 간 브로페

[전시회 후기] 실용적 천재의 이야기, "포르나세티 특별전"

브로+페는 브로페 2017. 2. 21. 20:40



 "피에로 포르나세티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내건 전시회는 종종 우리에게 막연한 어려움과 거부감을 준다. 이탈리아에서는 국보급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피에로 포르나세티(1913-1988)는, 우리나라에서는 (심지어 위키피디아에도 등재되지 않았을만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사전지식을 알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포르나세티'라는 이름에 더 큰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일까, DDP 지하에 위치한 「포르나세티 특별전」 입구는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전시회인 바로 옆 「스미스소니언 사진전」 입구만큼 붐볐다.

 입구로 들어가니까 왼편에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은 불독(?) 두 마리의 조각상이 정교하게 디자인된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었다.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당연히 저 개들의 벙찐 표정(...)인데, 그 아래 테이블 디자인이 심상치가 않다. 무언가 정교하게 계산된 듯한 직선과 아치들. 포르나세티에 대한 첫 번째 단서가 열렸다: 그는 훈데르트바서와는 정반대의 사상을 가지고 있겠구나. 자연보다는 수학적이고, 감정보다는 계산적인 듯 하다.

 병풍을 지나니 나타나는 이 독특한 옷장(?)을 보자마자 저 단서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기하학적인 패턴의 디자인과 각진 외형, 추상적이지 않은 인물묘사 등, 거기에 같은 모양을 한 서로 다른 디자인의 옷장. 거기다 이 옷장에는 묘한 착시현상까지 담겨있다.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표현한다면 어울리는 말일까? 마치 컴퓨터 그래픽으로 정교하게 뽑아낸 조형물같다. 물론 그가 살던 시대에는 그런 컴퓨터 따위는 없었겠지만 말이지.

 생각해보니 이 전시회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예술가'는 당연히 '미술가'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좁게는 아마 '그림가'였을 나의 편견은, '예술가라면 당연히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을테다. 그리고 다시 전시회로 돌아오니, 초장부터 조형물 천지였다. 옷장, 테이블, 의자, 병풍 등, 생활용품만 한가득 있는 이 전시회, 이케아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로 눈이 즐겁다.

 그럼에도 피에로 포르나세티는 당연히 그림도 그린 예술가이다. 그래서 어느 한 단어로 포르나세티를 수식하는 것이 힘들기는 하다. 그는 화가일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이기도 했으며, 스타일리스트이자 폰트 개발자이기도 했다. 귀찮으니까 그냥 '종합 예술가'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어떨까 할 정도로, 포르나세티는 다양한 방면에서 재능있는 예술가였던 것 같다.

전시회를 보는 내내 유쾌한 기분이 주위를 맴돈다. 정형화된 패턴에 수학적인 문양이라면 사실 금방 피로해지기가 쉬운데, 포르나세티는 작품들에 자신만의 유머를 넣어두었다. 착시효과를 이용한 트릭아트는 기본이고, 미니어처 놀이에 작품을 가지고 퍼즐놀이까지 펼친다. 사실 그 '퍼즐놀이'라는 것은 포르나세티만의 특징인 '변주' 떄문인데, 그는 하나의 디자인을 여러가지로 변형시키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아보인다.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것이 아닌, 비슷한 점이 눈에 당연히 들어오는 선에서 그는 여러 변주를 시도한다. 한편으로 현대문화의 '복제'라는 키워드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구시대 예술에서는 복제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포르나세티는 그것에 매우 관용적인 것 같다.

오로지 쟁반만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보고서는 조금 벙쪘지만, 생활에 디자인을 녹이는 것이 포르나세티의 철학 중 하나이기 때문에 금방 친숙해질 수 있었다. 마치 진짜 과일이 올려진 듯한 쟁반 디자인에, 역시 빠질 수 없는 수학적 비율을 이용한 패턴놀이, 그리고 픽셀아트의 시초인 것 같아보이는 강아지 디자인까지. 거기에 그만의 익살이 역시 녹아져있다. 포르나세티가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의 명성보다도 더욱 엄청난 디자이너가 되었을 것 같다.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웬 여인의 초상화를 활용한 작품들이 전시회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프랑스 오페라 가수 리나 카발리에리의 얼굴을 활용한 포르나세티는 이를 그림과 그릇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변주의 대가답게 다양한 얼굴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들은 단순한 변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하나하나가 매우 독창적으로 느껴지는 표정들을 담고 있다. 이 '창의적인 복제', 팝아트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하지만 팝아트는 너무 미국스럽잖아? 그러니까, 이탈리아식 팝아티스트 정도로 수식해도 괜찮을까? 왠지 모를 그 라틴스러운 분위기가, '이탈리아식'이라는 단어를 꼭 써야만 하게 만든다.

 포르나세티에 대해 몇가지 키워드를 뽑아보자면 단연코 수학, 유머, 변주 이 셋이 떠오른다. 이전에 보아온 전시들과는 묘하게 다른, 딱딱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 드는 「포르나세티 특별전」. 예술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조금 더 내려놓을 수 있게 해준 충격적(?) 전시회라고 평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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