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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Daily Life

[전시회 후기] 거침없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선사하다, "닉 나이트 사진전"

by 브로페 2017. 2. 20.

한남동에 있는 디뮤지엄과 통의동에 위치한 대림미술관이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디뮤지엄 「YOUTH전」 기념품샵에서 대림미술관 굿즈를 발견하고 나서였다. 그러고보니 이상하게 대림미술관하고는 사진전으로 많이 엮이는 기분이 든다. 첫 방문이었던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부터 지난주에 다녀온 디뮤지엄의 「YOUTH전」, 그리고 이번에 찾아가는 「닉 나이트 사진전」까지. 예술하는 친구가 대림미술관을 돈되는 예술만 하는 놈들이라고 호되게 비판하던데, 그래도 나는 대림미술관이 좋다. 나같이 예술 잘 모르는 예알못들에게는 오히려 쉽고 흥미로운 주제들이 더 잘 먹히니까.

 대림미술관은 조금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땅값 비싸다고 소문난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미술관이어서 그런가. 티켓부스가 있는 디라운지(D LOUNGE)와 미술관 본관이 따로 존재한다. 일반 가정집을 리모델링한 경력이 있어서 그런 걸까. 실제로 미술관 본관 1층에는 티켓부스 대신 기념품샵이 위치해있다. 생각해보니 합리적이다. 기념품샵을 다른 건물에 넣었으면 아무도 기념품을 사러 가지 않았겠지?

 2층부터 본격적으로 전시회가 시작된다. 운좋게 도슨트 운영시간에 맞춰가서 설명을 함께 들을 수 있었는데, 2층에서는 닉 나이트의 초기작, 3층에선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작품들, 그리고 4층에서는 더욱 현대적인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닉 나이트는 사진작가이면서 사진작가가 아니다. 그는 본인 스스로에게 이미지메이커(imagemaker)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이는 그의 작품이 단순히 사진 한장 찍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매체들과 융합하기도 하기 떄문이다.

 닉 나이트의 사진작가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된 계기인 '스킨헤드' 관련 사진들이 2층 입구에 걸려있다. 스킨헤드와 타투, 결국 기성사회에의 반항과 자유분방함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현방식이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디뮤지엄의 「YOUTH전」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YOUTH전」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이기도 한 '스킨헤드'니까. 보기에 따라 조금 기괴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세대와 상통하는 맥락이 있다. 가서 사진 속 인물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자.

 그 다음 섹션은 본격적인 패션 사진작가로서의 닉 나이트를 보여준다.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누드같아 보이는 사진이 패션 사진이 되고 실루엣만 있는 사람이 패션 모델이 된다. 특히 인상깊었던 사진은 올 3월 개봉예정인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의 포스터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여성 모델의 사진인데, 저런 중성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촬영한 시기는 놀랍게도 1980년대라고 한다. 그 시대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관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

 3층으로 올라가고 나면 본격적으로 비현실적인 작품들이 등장한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닉 나이트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작가로 변모했고,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활용하여 작품을 내기 시작한다. 쉽게 생각하면 그냥 뽀샵질(...)인 거다. 원래대로라면 '이놈들, 어디에다 대고 신성한 우리 예술작품에 뽀샵질이야?!' 하면서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다르게 본다면 닉 나이트는 뽀샵질의 선구자, 그리고 그 선구자들 중에서도 제일 앞서 나간 선구자라고 할 수 있겠다. 뭐든지 제일 먼저 개척하면 인정받는 것이 예술 아닐까?

 이런 디지털 보정을 거친 작품들을 이해하려면 아마도 메이킹 필름이 필요할 것 같다. 배경지식이 있지 않으면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 자체를 알 길이 없고, 그렇다면 느끼는 것도 많지 않을테니까. 아래에 몇 가지 비디오를 링크한다. 이 메이킹 필름들을 보면서 작품을 다시 본다면, 아마 닉 나이트의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 한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대망의 '분홍 가루 드레스(...).' 물론 어느 정도 컴퓨터를 이용한 보정이 들어갔겠지만, 저 분홍색 드레스를 물들이는 분홍 가루는 실제 드레스에 분홍 가루를 묻힌 것이라고 한다. 인도의 '홀리'라는 축제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이 사진 속 드레스에는, 실제 런웨이에서도 가루를 폴폴 휘날렸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고보면 패션은 반드시 실용을 고집하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직접 입는 옷들은 몰라도, 패션쇼에 나오는 옷들을 보면 저걸 어떻게 입나 싶은 옷들도 참 많더라.

 닉 나이트의 이미지 중에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사진작품도 많다. 강렬한 행동과 색채로 폭력을 비판하는 작품, 장애인 모델을 찍은 작품 등, 단순히 미적 감각만을 추구하지만은 않는 모양이다. 이 역시도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작품들이 많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닉 나이트의 발달 과정을 보자면, 스킨헤드로 입문해서 패션 사진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가 컴퓨터를 접해서 그 기술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데 집중하는 삶을 산 것이다.

 최근의 닉 나이트는 그가 말하는 '이미지'의 범주를 계속적으로 넓혀가는 중이라고 한다. 기존의 사진작품을 넘어서 이제는 영상으로도 패션을 표현하고 있다는데, 도슨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지론 중 하나는 '패션은 사진보다 영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시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4층은 미디어아트 위주로 전시가 되어있다. 많은 작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서 기념품샵. 예뻐보이는 굿즈들은 많은데, 마땅히 살 것은 없어보인다. 그래도 다채로운 상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니, 또 하나의 전시회라고 생각하고 한 번 둘러보자. 전시관 밖으로 나가면 볼 수 있는 카페 「미술관옆집」에서는 입장권을 보여주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무료로 제공한다. 전시회의 여운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옆집으로 가자.

 전시회를 마치면서 내려오는 길에 인상깊었던 문구를 보고 괜히 공감폭발했다. 다른 사람들이 정해주는 길을 걷지 말고, 내 인생의 길은 내가 만들어가라는 한 마디가, 아마도 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릴테다. 저렇게 사는 것이 마냥 쉬운 길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 '진짜 나의 삶'을 찾을 수 있는거니까, 내 인생의 룰은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I must trust myself, and I must believe in what I do.
It may be an arrogant belief, but I can't look to anyone else to show me the way.
I think nobody should play their life by other people's rules."

"나는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을 믿어야만 한다. 그것은 오만한 믿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가 가야 할 일을 제시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 누구도 다른 이들이 만든 잣대에 자신의 삶을 맞춰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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