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드인은 사실 나에게 이직을 위한 단순한 커리어 정리 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링크드인에 접속하며 다양한 생각을 접하고 읽는 데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단연코 많은 사람들의 회고록인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의 노출을 통한 자가반성과 채찍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 역시 이러한 트렌드에 동참(?)하기 위해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조금은 늦은 2022년 회고, 나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
- PI로 데이터 플랫폼 구축하기
- 전통 대기업에서 테크 기업으로의 이직
- 새로운 데이터, 새로운 문화와의 싸움
- 어떤 스킬은 늘었고, 어떤 스킬은 퇴보했다
- 올해는 무엇을 해야 할까
PI로 데이터 플랫폼 구축하기
채용 시장에서 대기업 그룹 내 이동도 이직으로 치는지 모르겠지만, 2021년 연말 즈음에 새 회사(a.k.a. 전직장의 자회사)로 이직을 했다. 하는 일은 전과 동일하게 데이터를 다루는 일이었지만, 데이터를 다루려면 DW가 필요했고 마침 새 회사의 당면한 최대 과제인 차세대 시스템 구축에 신규 DW 및 데이터 플랫폼 구축이 포함되어 있어 내 일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그래도 몇 안 되는 사내 분석가 중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링 ‘비스무리’한 것을 해보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데이터 분석 일을 조금 덜 건드리게 되었지만 사실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함께 사내 데이터의 플로우를 살펴보고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비즈니스 영역을 나누고, 그에 맞게 데이터를 분석 목적에 맞게 구성하는 일은 데이터 분석가로 살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 다행히 어느 회사에나 존재하는 비즈니스 영역인 ‘고객’ 분야의 데이터 구조를 살피고, 분석용 데이터 마트를 설계하는 일을 했다.
분석가가, 마케터가, 기획팀 직원이 고객에 대해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모조리 브레인스토밍하고 이를 적절한 Dimension과 Measure로 재구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설계 중인 차세대 시스템의 데이터 구조와 align해야 하는지라 중간중간 그쪽 구조가 바뀔 때마다 애를 크게 먹었지만, 나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분석가는 보통 있는 데이터를 쓰는 역할이지, 백지에서 데이터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아니니까.
전통 대기업에서 테크 기업으로의 이직
회사에서의 일은 순조로웠지만 마음 한편에서의 불안함은 항상 있었다. 통계/수학을 전공한 기초부터 데이터 분석가는 아니었고, 회사의 DT(Digital Transformation) 추진도 내 기대만큼 빠르진 않았다. 엄청난 활황이었던 개발자/데이터 채용 시장도 슬슬 끝물이 보이기 시작했고, 마음속에서는 “지금 놓인 환경에서 더 성장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계속 자라났다.
링크드인을 재정비하고, 리멤버와 원티드에도 이력서를 정리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내 기대보다 많은 제안들이 들어오기 시작헀고, 그렇게 정신없이 서류와 폰 인터뷰, 코딩 테스트와 온라인 인터뷰를 여러 군데에서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두 군데에서 합격 안내를 받았고, 거시경제 상황과 커리어 패스를 고려해서 현 회사로의 이직을 결정했다. 이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조금 더 풀어보면 좋을 것 같지만, 어쨌든 그렇게 파란만장했던 대기업 생활을 마치고 테크 기업의 데이터 분석가로 이직하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좋은 타이밍에 좋은 포지션으로 이직하게 된 것 같다. 연봉이 높아졌음은 물론, 새 회사에서는 데이터 분석에 대한 현업의 수요가 굉장히 높아 분석가가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비즈니스를 운용하고 있어 추후 사내에서 다른 포지션, 혹은 다른 비즈니스로의 이동이 원활할 것으로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그 당시 이직한 후에 데이터 분석가로 오픈된 포지션이 많이 줄었다. 타이밍에 운이 여러모로 많이 따라준 이직이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데이터, 새로운 문화와의 싸움
새 보금자리는 정말이지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 직장과는 정말 180도 다른 문화가 여러 부분에서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몇 가지 간단히 나열해 보자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 외국인 동료들이 정말 많아 영어를 엄청나게 사용해야 한다
- 내 기대보다 더 체계적으로, 빠르게 일한다 (a.k.a.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중간이랄까)
- 재택근무 환경이 잘 되어있다
- (중요) 누구나 SQL 쿼리를 활용해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되어 있다
- (더 중요) 모든(은 아니어도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데이터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아래 두 가지 문화는 데이터 분석가가 활동하기에 정말 중요한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데이터를 아무리 잘 다루어도 회사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곳이 바로 커리어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구성원 개개인이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자기만의 쿼리를 가지고 있고,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언제나 데이터와 숫자가 언급된다.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만큼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내가 맞닥뜨려야 했던 가장 큰 챌린지는 바로 비즈니스 그 자체였다. 호텔 비즈니스와 Staff 조직 데이터, 고객 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다루어 왔던 나에게 하나의 비즈니스 영역을 전담하는 것은 상당히 낯선 경험이었는데, 하필이면 이 비즈니스가 이커머스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SCM 영역이다. 전 직장에서도 잠깐만 다루어보았던 데이터를 전담으로 다루려니 적응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도 사실이다. 아니, 아직 더 적응하고 배울 것이 많이 남아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어떤 스킬은 늘었고, 어떤 스킬은 정체했다
새 회사의 특성에 맞추어 내가 가지고 있던 스킬 중 어떤 것들은 더욱 성장하였고 어떤 것들은 더욱 퇴보하였다. 성장한 스킬은 대표적으로 SQL이 있겠다. 정말이지 엄청난 양의 데이터 속에서 인사이트를 발굴해야 하다 보니 단순한 JOIN 몇 번으로 데이터를 구성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더욱 고차원의 쿼리를 짜야했다. 심지어 내가 직접 샌드박스에서 테이블을 생성하고, 관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 SQL 실력은 정말이지 일취월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다만 DB와 테이블 구성에 너무 몰두하다 보니 반대급부로 Python과 같은 개발 언어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머신러닝은 담당하는 주요 조직이 있다 보니 내가 직접 파이썬을 활용하여 모델을 짜는 일들은 많지 않은 상태이다. 틈틈이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해도 실무에서 직접 활용하는 것과는 천지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어떻게든 업무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겠다.
올해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작년은 커리어상으로도 상당히 격변이 많았던 해다. 같은 직무로 이직을 했어도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특히 사용하는 주 종목이 바뀌었기 때문에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스킬을 잘 성장시키거나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올해의 목표는 한번 더 글을 써볼 여지가 있겠지만, 아래 다섯 가지만 달성하더라도 올해는 커리어적으로 꽤 알찬 한 해가 될 것 같다.
- 비즈니스 영역을 완전히 이해하자
- SCM의 세계는 넓고, 아직 이해해야 할 비즈니스 구조가 많다. 데이터 분석가의 가치는 비즈니스를 완전히 이해하고 이를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데서 빛을 발하기 때문에, 이 회사에서 나의 성패는 여기에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 SQL을 극한으로 잘해보자
- 비즈니스를 완전히 이해했다면 그것을 데이터와 리포트로 풀어야 한다. SQL은 그에 있어 최고의 Skill 중 하나로, 극한까지 써먹는다면 정말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분석가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도록 SQL을 다루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 Python을 더욱 써먹어보자
- SQL과 함께 데이터 분석의 양대 언어임에도 점점 사용하는 일이 줄고 있다. 추후 다른 비즈니스로 옮기거나 회사를 옮기더라도 이 스킬은 반드시 유지/성장해야 나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 Power Query를 활용해보자
- SQL과 Python이 물론 제일 중요한 Skillset임에는 틀림없지만 의외로 엑셀 안에서 데이터를 잘 다루는 것은 분석가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Power Query를 통해 엑셀에서도 데이터를 기깔나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 통계/수학 공부를 꾸준히 해두자
- 나의 커리어에서 컴플렉스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전공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수학적 접근에서 많이 약하다고 생각하고, 이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다음 커리어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다. 분석가의 기본기인 수학/통계 공부는 상시 해두는 것이 좋다.
마치며
생각만 하던 점을 글로 옮겨보니 정리도 잘 되고, 반강제로 박제(?)도 되는 효과가 있다. 부지런한 분들은 분기 회고도 해본다는데, 3월이 지나가고 회사의 1분기 실적이 나올 즘에 내 커리어의 경영 실적 발표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들 월요일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