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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Daily Life

[서촌/통인동/맛집] 50년 전통의 중식당 "영화루"

by 브로페 2017. 2. 17.



 서촌이나 북촌같은 경복궁 주변 마을의 이름을 떠올리면 왠지 전통 한옥이 떠오르고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정말 촌(村)스러운 여행객들이 생각난다. 북촌이야 한옥마을이 있어 대부분 맞는 말이지만, 서촌은 의외로 전통을 대표하는 곳은 아니다. 행정구역상으로 통의, 통인, 사직, 누하, 창성동 등을 엮어 부르는, 고즈넉한 카페와 골목, 자그마한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서촌마을은 전통보다는 근현대가 간직되어 있는 곳으로 꼽힌다. 오히려 북촌 옆 삼청동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나 할까.

 이 곳에 50여 년동안 전통을 지켜오는 중식당이 있다고 한다. 그 오랜 골목 한구석에 있던 광화문집도 37년밖에 되지를 않았는데, 도대체 50년이나 된 곳의 짜장면 맛은 어떨까? 마침 대림미술관의 「닉 나이트 사진전」을 보러갈 예정이었는데, 같이 방문하면 좋겠다 싶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중국집에 가보려고 서촌까지 나서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어쨌든 50년 전통의 중식당, 「영화루」에 찾아가보았다.

 「영화루」는 서촌 골목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곳이다. 그래도 가는 길에 갤러리나 카페, 작은 서점이나 음식점이 많아 심심하지는 않다. 서촌의 구석진 골목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는 「대오서점」이 자리하고 있고, 일본에서 건너온 금상고로케를 파는 집도 있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저 멀리 인왕산이 보이는 것이 꽤나 운치있는데, 생각보다 가까워보여서 그냥 동네 뒷산같아 보인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걷다보면 「영화루」가 보인다. 가면서 인스타그램으로 #영화루 를 검색해보니 울산 언양에 있는 누각 이름이 뜨길래 세상 어딘가에 진짜 영화루가 있겠구나 했는데, 구글에 '영화루'를 검색하면 이 집밖에 뜨지를 않는다. 원조를 밀어내고 진짜가 되어버린 중국집이라... 50년 전 사장님이 가게를 일으키실 때 영화루를 알고 쓰셨는지, 모르고 쓰셨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영원히 화목하라'는 이름 뜻 하나는 식당에 정말 잘 맞는 명명같다. 

 식당 안은 바깥의 간판만큼이나 오래되었다. 비좁은 공간에 책상과 연회석을 꾸깃꾸깃 집어넣은 듯한 배치, 천장 어딘가에 다닥다닥 붙은 유명인들의 사인, 그리고 십 몇년 만에 실물로 다시 보게 된 델몬트 훼미리 주스병(...)까지. 저게 사람들이 사놓고 물병으로 너무 잘 쓰는 바람에 플라스틱으로 바꾸고 단종된 그 전설의 보틀(...)이라던데, 어렸을 적 할머니댁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니 정말 오랜만이다. 생각해보니 오래된 식당에 걸맞는 컨셉 아이템으로 제격인 듯 하다.

 원래 「영화루」는 매운 고추간짜장으로 유명하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당연히 시그니처 음식을 먹어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아무 생각없이 탕수육까지 함께 있는 세트메뉴를 시키면서 문제가 생겼다. 당연히 고추간짜장이 기본으로 되어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세트를 시켰는데, 세트메뉴의 짜장면은 그냥 일반 짜장면이었던 것(...). 간짜장과 그냥 짜장면을 구분하지 못하는 짜알못(...)이 되어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그래도 이왕 시킨 거,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리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짜장면과 탕수육 세트를 시키면, 군만두가 딸린 탕수육이 먼저 나온다. 그런데 탕수육이... 탕수육이...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루」는 부먹파였다. 당연히 찍먹은 옳고 부먹은 틀린 것 아닌가, 하는 브로페의 생각을 와장창 깨어버린 전통의 중국집. 그래도 양심은 있으셨는지 소스를 반만 부어놓으셨다. 그래도 눅눅한 튀김옷을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 한켠이 울적해진다. 

 ...는 (진담 반쯤 섞인) 장난이고, 탕수육 맛은 아주 훌륭했다. 사실 흔한 중국집에서 주는 탕수육보다는 양꼬치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꿔바로우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부먹이라 그런지), 한국식 탕수육과 중국식 꿔바로우 그 사이 어딘가를 절묘하게 파고든 메뉴라고 생각한다. 튀김옷도 그 자체는 잘 튀겨져서 질지도 않고, 안에 있는 돼지고기도 부드럽다. 소스의 점도가 아주 끈적끈적하다못해 푸딩같이 형상을 기억하긴 하다만, 그래도 맛 자체는 퍽 괜찮은 편이다. 

짜장면 역시 일품이었다. 중국집에 직접 찾아가서 먹는 짜장면의 특징인 탱탱한 면발은 그렇다 치더라도,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짜장소스가 백미다. 짜장소스가 너무 기름지다면 오래, 많이 먹기 힘든데, 「영화루」의 정갈한 짜장소스는 쫄깃한 면발과 어우러져 입 안에 그 풍미를 뽐낸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독특하고 색다른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시중에 나오는 여러 중국집의 짜장면과 비교했을 때 아주 깔끔한 식감을 자랑한다는 것이 제일 큰 차이점이라고 할 뿐이다. 

 「영화루」의 음식 맛을 '전통'만이 가지는 특별함으로 포장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닌 것 같다. 맛 자체는 다른 중국집과 크게 다르지 않고, 사실 그런 면에서의 차별화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음식과 그 식감에 50년의 경륜이 들어가있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더부룩하지 않고 정갈한 「영화루」의 중국음식은, 한마디로 '모범적인' 중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격이 조금 흠이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값어치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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