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에서 아라모던아트뮤지엄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은 406번 버스를 타고 조계사 정류장에서 하차하는 것이다. 얼리버드로 「알폰스무하전」을 보고 나서 부랴부랴 「데이비드 라샤펠전」을 보기 위해 인사동으로 향하던 브로페. 문득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한다. 인사동에는 전통 맛집도 많을테니 한번 찾아볼까, 하고 버스에서 내렸는데, 웬 궁서체 간판이 좁은 골목 어귀에 걸려있었다. 바로 옆에 걸려있는 약국 간판도 촌스러워 죽겠는데, 「里門설렁탕」이라고 적혀있는 간판, 예사롭지가 않다.
인터넷으로 바로 검색해보니, 「이문설렁탕」은 무려 113년이나 된 엄청나게 오래된 설렁탕집이라고 한다. 정치깡패 김두한이 알바(...)하던 곳,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옹이 단골손님이었던 식당이라는 어마무시한 경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금의 건물은 2011년의 재개발로 옮겨온 건물로, 그 전에는 정갈한 한옥풍 건물에서 장사를 하던 식당이다. 새로운 건물에 위치한 「이문설렁탕」, 내부는 넓고 깔끔했다.
「이문설렁탕」은 미슐랭 빕 구르망에 선정된 식당이기도 하다. "빕 구르망(Bib Gourmand)"이란, 미슐랭 스타를 받지는 못했지만 가성비가 매우 뛰어난 식당을 지칭하는 미슐랭 매거진의 용어로, 1인당 35,000원 미만의 가격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지칭한다. 설렁탕 전문점으로는 유일하게 빕구르망 호칭을 받은 「이문설렁탕」, 과연 맛은 어떨까?
설렁탕의 맛을 알기 전, 배가 많이 고팠던 브로페는 특 사이즈 설렁탕 한 그릇을 주문했다. 주문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나온 특 사이즈 설렁탕, 고기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숟가락으로 사발 안을 휘휘 저어봐도 나오는 것은 고기뿐. 소면과 밥은 사발 맨 아래에 깔려있고 나머지는 전부 고기다. 특 사이즈로 주문을 했던 것이 아마도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말 그대로 폭풍흡입하기 좋은 양이다.
밑반찬으로 배추김치와 거대깍두기가 나오는데, 둘 다 생각보다 맵지 않고 오히려 달달한 맛이다. 특히 배추김치 중독성이 매우 강하니 주의! 직접 썰어먹어야 해서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김치를 좋아한다면 설렁탕 한 그릇과 함께 즐기기 좋은 맛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미친듯이 흡입하다가 웬 검붉은 색의 고기가 나왔다. 비장(또는 지라)라고 하는 이 내장부위는 식감이 그닥 좋지는 않다. 비주얼은 마치 순대 허파처럼 생긴 것이, 양지살같이 쫄깃하지도 않고 뭔가가 바스러져 내려앉는 그런 느낌이다. 아마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 같지만, 아무거나 잘 먹는 브로페는 일단 맛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맛있다기보다는 식감이 독특해서 좋았다고나 할까?
국물은 화학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먹던 설렁탕보다는 국물이 확실히 깔끔했다. 굳이 깍두기 국물을 풀지 않아도 충분히 풍미를 즐길 수 있었던 설렁탕, 하지만 소금 간은 알아서 쳐야 한다는 것!
처음이어서 잘 몰랐지만 이것마저도 가격이 예전에 비해 많이 오른 것이라고 한다. 배부르게 먹고 싶다면 특 사이즈를 시키는 것이 좋겠지만, 가격이 어쩐지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 한 번 먹고 나면 저 가격이 그렇게 아까울 것 같지는 않다. 꼭 식사뿐만 아니라 직장인들 술자리로도 괜찮을 「이문설렁탕」, 조금 비싸지만 그 맛을 생각한다면 특 설렁탕 12,000원은 전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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