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청년 기간제'의 다른 말인 인턴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강남으로 매일 출근을 한다. 출근 루트도 단순하다. 집에서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왕십리역으로, 왕십리역에서 분당선을 타고 선릉역으로, 선릉역에서 버스를 타고 회사까지. 사실 집에서 회사앞까지 가는 버스가 있긴 한데, 출근시간에 강남가는 버스는 타는 게 아니라고 배워서 그냥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빅이슈가 이슈였을 때부터 나는 노숙자들의 잡지판매가 꽤 괜찮은 자립모델이라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빅판(빅이슈 판매원)을 보면 항상 주저없이 잡지를 사는 편이다. 일부러 빅판을 찾아서 사지는 않지만, 일단 눈에 빅판이 보이면 주저없이 한 권 사기는 한다. 생각보다 5,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컨텐츠는 알찬 편!
인턴으로 일하고 나서 첫 한두달은 선릉역 빅판 아저씨가 출근길마다 보이길래 꼬박꼬박 한권 두권 빅이슈를 사서 보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출근시간대에 빅판 아저씨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빅이슈 잡지를 사는 일이 없어져버렸다. 큰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릉역 출구를 나올 때마다 항상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빨간 조끼를 입은 누군가가 가판대에서 잡지를 팔고 있는 그 광경을.
근 세달 만에 드디어 선릉역에 빅판 아저씨가 나타났다. 몇달 간 못 본 미안함에, 아니면 설렘에, 아저씨에게 대뜸 지난 권까지 포함해서 세 권을 달라고 했다. 혹시나 해서 지갑에 현금뭉치를 좀 들고 다녔었는데, 다행이었다(요즘은 사실 카드도 된다). 빅판 아저씨들의 환한 웃음은, 가식이 묻어있지 않을 것 같아서 볼 떄마다 흐뭇하다.
좀 더 자주자주 봤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빅이슈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선릉역 빅판의 판매시간은 오후 2시부터 8시까지다. 아침에 팔고 계셨던 게 정식 근무시간 외인 것 같아서, 언제 또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저씨가 보일 때는 항상 한 권 더 사려고 한다. 자립을 위해 구걸하지 않고, 떳떳하게 일하면서 항상 환하게 웃음짓는 빅판 아저씨들은, 마음만은 홈리스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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