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후기] 전쟁이 앗아가는 인간성에 대하여

 

💡 이번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4개 부문 수상에 성공했다. 마침 주말에 미뤄뒀던 이 영화를 본 터라, 시청 후기를 남겨볼까 한다. 전쟁이 앗아가는 인간성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여운이 짙은 영화다.

 
 

•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병사와, 장군과, 정치인의 전쟁
• 전쟁이 앗아가는 인간성
• 전쟁의 정당한 이유에 대하여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작년 넷플릭스 최고 화제작 중 하나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드디어 감상했다. 이 영화는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동명의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각색한 작품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 사이 서부전선에서 싸우는 젊은 병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1917>, <라파예트> 등 전쟁의 낭만을 그리거나, 전쟁의 참혹함을 그리는 영화들로 나뉜다. 이번 영화는 단연코, 낭만 따위는 없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싸우는 배경은 전쟁으로 인한 국가와 개인 간의 갈등, 그리고 참호로 대표되는 전쟁의 비인간성과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도 병사들은 인간성을 잃지 않고, 또한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이 영화로 각종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제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각색/음악/미술/분장/촬영/음향/시각효과/국제영화 등 총 9개 부문 노미네이트 및 음악/미술/촬영/국제영화 총 4개 부문 수상이라는 쾌거를 달성해 냈다.실제로도 전투 장면이 아주 사실적으로 잘 묘사가 되어있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술 관련된 부분을 싹쓸이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병사와, 장군과, 정치인의 전쟁

영화는 크게 세 명의 인물의 시점에서 스토리를 끌어나가고 있다. 먼저 독일군 병사 파울은 김나지움의 학생으로, 친구들과 자원입대하여 서부전선 최전방에 배치된다. 전후방을 넘나들며 친구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적진 참호로 성공적으로 돌격하지만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병기들에 공포도 느끼게 되며, 점점 전쟁 초의 활기를 잃게 된다. 종국에는 종전 15분을 남기고, 프랑스군의 참호로 돌격했어야만 하는, 어떻게 보면 이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일반 시민과 병사들을 상징하는 존재다.
프리드리히 장군은 서부 전선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이다. 병사들이 참호 속에서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동안, 프리드리히는 고성 안에 차려진 사령부에서 따뜻한 불과 맛있는 음식과 함께한다. 군인으로서 그는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압박에 눌리고 있고, 정치인들의 어중간하거나 손해를 보는 휴전을 반대한다. 종국에는 종전 협정 소식을 듣고 한 뼘의 땅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병사들을 끌어모아 적군의 참호로 마지막 돌격을 명한다.
정치인 마티아스는 평화 협상을 위해 정부를 설득하고, 직접 프랑스로 건너가 협정을 주도해야만 하는 인물이다. 프랑스 측의 무리한 강요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밀고 나가는 사람이며, 주위 협상단과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해 낸 끝에 종전 협정을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스토리는 이 세 명의 행동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 채로 참혹한 전쟁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이 앗아가는 인간성

전쟁의 참혹함은 미디어에서 꽤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묘사된다. 가족의 생이별과 분열을 그린 <태극기 휘날리며>, 한 명을 살리기 위해 중대 전체가 희생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연출로나 혹은 시나리오적으로도 여러 장치를 넣는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인간성의 상실을 중점적으로 묘사한다. 김나지움의 학생이었던 주인공 파울은, 입대 전의 활기찬 일상을 뒤로 하고 전쟁터에서 점점 인간성을 상실해 간다. 그래도 주인공은 나은 편이었을까? 파울의 친구들은 전장에 투입되자마자 전사하거나,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주인공의 근처에서 하나 둘 사라져 간다. 어느새 마지막 전투가 다가왔을 땐, 이미 파울을 빼고는 모두 죽고 없어진 상태였다. 그들의 빈자리는, 파울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신병으로 채워진다.
전쟁은 전후방을 막론하고 모두를 물질적으로도 피폐하게 만든다. 참호로 대표되는 전쟁터는 항상 열악하다. 비가 내리면 물을 밖으로 빼내야 하고, 주방에는 쥐가 들끓는다. 파울 일행은 변변한 음식이 없어 인근 농장에서 거위를 훔치고, 적진 참호를 돌파하자마자 프랑스군의 음식을 허겁지겁 뺏어먹는 데 몰두한다. 그러는 동안 고위급 장성들은 좋은 곳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
종전 협정의 소식이 들려오자, 병사들은 여기저기 허공에 총을 쏴대며 종전을 자축한다. 마치 영화 <조커>에 나오는 폭동의 장면과 같이, 참호 속에서 적을 찔러 죽이는 광기와는 다른 광기를 보여준다. 그 광기는 결국 장군의 광기를 자극해, 모든 병사들이 마지막 돌격을 하게 만든다. 전쟁은 진행 중일 때도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끝나고 나서도 그 사람들의 인생을 미치게 만든다.
 

전쟁의 정당한 이유에 대하여

파울이 입대할 당시, 아무 것도 모르는 독일 시민들은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파리를 점령하고 전쟁을 곧 끝낼 것으로 믿고 있다. 실제로는 무려 18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참호 하나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졌고, 전쟁의 목적은 어느새 잊히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잊힌 전쟁을, 병사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떤 이유와 명분이 전쟁이란 끔찍한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지금 지구 반대편에도 똑같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키는 자들은 전쟁의 목적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싸워야 내 나라가 살고 가족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일선의 러시아군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싸우고 있을까? 일 년동안 도시 하나를 제대로 빼앗지 못한 바흐무트 전장의 러시아군은, 특히 무슨 마음으로 진격하고, 죽어가게 될까?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 질문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전쟁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 나라와 이념, 가치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전쟁이라면 나는 다치고 죽을 지언정 정당한 이유를 위해 싸우게 된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갖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 없이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면, 그 전쟁에서 살아남게 되더라도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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