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개쩌는 브금부터 깔고 가겠습니다.
(제발 풀볼륨으로 들어주세요)
들어가며
좋아하는 여러가지 영화 장르를 떠올리면 판타지, SF, 액션 등이 있지만, 유독 내가 환장하는 장르 중 하나는 "팀워크" 장르다. 눈 앞에 닥친 문제를 주인공 뿐만 아니라 조력자와 집단이 단체로 치고받고 싸우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그런 장르를 언젠가부터 유독 좋아하게 되었다. 너무 어렵게 들린다면, 직관적으로는 <머니볼> 같은 영화도 있고, <미션 임파서블>과 같이 스파이물도 이런 "팀워크" 장르에 해당할 수 있겠다. 고르세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나 목표를 팀이 우여곡절 끝에 해결하고 달성하는 그 과정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나에게는 매우 짜릿하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최근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더 증폭된 것 같다.
관객들은 <F1: 더무비>에서 마치 <탑건:매버릭>과 같은 전율을 느낀다. 나도 그렇다. 리클라이너석에 앉아 그 어떤 영화보다 편히 보았는데, 마지막 레이싱 씬에서는 그 어떤 영화를 보고 있을 때보다도 심장이 쿵쾅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남자들에게 불변의 로망인 스피드를 체감시켜주는 점에서, <F1: 더 무비>는 한 편의 개쩌는 테토영화다. 이 분야 전문가인 조셉 코신스키 감독과 한스 짐머의 OST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더 여운이 남는 부분은 이런 테토 모먼트 뿐만은 아니었다. 이 APX GP라는 팀이, 주인공 소니와 조슈아가 우승이라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해나가는가를 잔잔하게 복기해보는 순간은 스타트업을 다니며 문제 해결의 선두에 서야 하는 나에게 더 뜻깊은 순간이었다. 레이싱 장면을 보며 뿜어져나오는 아드레날린은 순간이지만, 오히려 몇 시간이 지날 때까지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은, "저 팀 팀빌딩 진짜 잘됐다"라는 칭찬뿐이었다. 나는 이런 서사를 매우, 몹시, 정말 좋아한다.
그들은 어떻게 개쩌는 팀이 되었는가
영화의 주인공 팀으로 나오는 APX GP는 무언가 잘못 꼬여 있는 팀이고, 그렇게 이번 시즌을 보냈을 때 거의 매각이 확정된 상황에 놓여있다. 차량도 문제인데, 드라이버도 문제다.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시한부 상황에서 팀의 오너 루벤(하비에르 바르뎀 분)은 오랜 친구이자 드라이버 소니(브래드 피트 분)를 데려오는 결정으로 문제 해결을 시작한다. 마치 핵심 인력이 모두 이탈한 스타트업에서, 어떻게든 실적을 내기 위해 외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을 영입하는 것을 보는 듯 했다.
소니는 오자마자 2가지 진단을 내린다. 1) 차가 똥차 수준이라 이걸로는 절대 우승을 못한다. 2) 하나 있는 드라이버가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 소니는 실수로 인해 질책받는 테크니컬 팀에게 대신 격려를 건네는 동시에, 디렉터인 케이트에게는 보다 분명한 요구를 건넨다. "코너에서 이길 수 있는 차를 만들어 달라"고. 하지만 이에 케이트는 또다른 요구를 건넨다. "레이스 완주부터 하면 해줄게"라고. 사실 소니도 완벽한 드라이버가 아닌지라 악동스러운 행동으로 팀을 경악시키고 있었고, 그들은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불만과 개선안을 직접적으로 요구한다.
시즌 종료까지 남은 그랑프리는 9번. 그리고 첫 번째 경기에서부터 소니는 조슈아와 함께 얼탱이가 없는 더블 리타이어를 당한다. 그런데 그 부분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인상 깊었다. 첫 시도에서부터 환상의 팀워크를 보이는 팀이 완성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기 때문일까. 팀워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소니와 조슈아는 매번 엄청난 disagree 과정을 겪는다. 주먹다짐만 없었을 뿐이지, 그 과정 자체는 팀이 더욱 막장으로 향하는 것 처럼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두번째 경기부터 소니의 뭔가 요상한 작전을 통해 조슈아가 상위 랭크로 진출하게 되자, 서로 간에 작은 신뢰가 형성된다. 외부에서 보았을 때는 꽤나 파멸적인 전략이지만, 소니의 희생 아닌 희생을 통해 조슈아, 아니 팀이 생존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를 통해 두 드라이버 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하나로 결속되기 시작한다. 최첨단 시설에서 과학적인 트레이닝을 받는 조슈아와, 올드스쿨 방식으로 자기만의 트레이닝을 이어가는 소니. 그리고 소니의 성과를 인정하며 팀원들이 하나둘씩 소니의 트레이닝 방식인 아침 트랙 구보를 함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팀원들의 수가 매번 늘어나며 마지막 경기에는 거의 모든 팀원들이 함께 뛰게 되는데, 뭔가 팀으로서 한 방향으로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 같아 뭉클한 장면이었다.
물론 시련은 있다. 외부에서의 음모 때문에 업그레이드한 차량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조언을 무시하고 달리다가 조슈아가 크게 다치는 사고도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소니 역시 방황하며 둘은 다시 반목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테크 디렉터 케이트가 (진짜) 포커판을 펼쳐 둘의 솔직한 소통을 유도하고, 덤으로 소니와 케이트 역시 솔직한(?) 소통을 통해 진정한 팀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 온갖 고난을 이겨낸 APX GP는 드디어 첫 우승컵을 손에 쥐게 된다.
F1과 스타트업: 성과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전형적인 영웅 서사물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주인공 소니의 합류 후, 팀의 변화에 따른 고난 극복 스토리라는 점에서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어느 한 명이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는 있어도, 특히 스포츠의 세상에서는 팀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팀원'이라는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탑건: 매버릭>에서도 두 개의 편대가 각각의 역할을 해내며 임무를 완수한 것 처럼 말이다. 특히 F1처럼 수많은 테크니션들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만 드라이버가 레이싱에서 제 몫을 펼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F1에서의 스포트라이트는 드라이버에게 돌아가고 그들이 성과에 있어 핵심 변수이긴 하다. 하지만 2초도 안되는 극한의 시간 내에 정비를 마치고 드라이버가 달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팀이 없다면, 레전더리한 드라이버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다. 그리고 그 팀이 하나의 호흡과 방향을 가지고 제 시간에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각각의 테크니션이 아무리 훌륭해봤자 1.82초라는 기록은 나올 수가 없다. 결국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실행과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만, 비로소 성과가 창출된다.
말이 쉽고 영화에서도 결말은 좋았지만, 현실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목표 관리가 주 업무인 전략 담당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팀과 회사가 처한 상황, 팀원들의 사기, 지식 수준, 시니어와 리드의 존재 등등 정말 다양한 변수를 하나의 목표로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 숫자 분석과 대안 도출 등의 행위보다 천 배는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한 가지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단서는, 바로 소니와 케이트의 대화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소니는 팀에 합류하자마자 차량에 대해 진단하고, 트랙의 어느 부분에서 차량이 기능하지 않는지 전달하며, 어떤 문제를 해결했을 때 성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케이트에게 분명하게 전달한다. 전략 직무의 역할이 이것이 아닐까 싶었다. 1) 회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 2) 그것을 바탕으로 한 현장 조직에게의 분명한 요구, 3)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비전 제시. 이 3가지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각 팀의 목표를 회사의 목표에 일치시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고 성과가 된다.
이것도 그냥 하면 되지 않는다. 소니가 이 이야기를 처음 케이트에게 꺼냈을 때, 케이트는 소니를 매우 경계하며, 오히려 "너부터 잘해야 내가 들어주겠다"고 한다. 둘 사이에 신뢰가 없으면 요구가 분명하고 비저닝 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소니는 그것을 파악하고 두번째 레이싱에서 온갖 이상한 방법들을 동원해가며 완주에 성공하고, 그렇게 둘 사이에 신뢰가 생기면서 개선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만드는 행동이야말로 전략 직무로 입사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이 아닐까?
이리저리 생각을 확장해보았는데, 결국 신뢰를 주는 행동을 기반으로 한 진단, 요구 그리고 비저닝이 문제를 해결한다. 아드레날린을 펑펑 쏟아붇는 영화 리뷰치고는 결론이 이상하지만, 일잘러가 되고 싶은 나에게 스포츠 영화들은 항상 이런 희망찬 결론을 던져준다. 단순히 잘 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될 수 없음을 다시 일깨워준 <F1: 더무비> 명대사와 함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Hope is not a strategy.
여담: 그냥 하고 싶었던 말들
한스 짐머의 OST가 개쩝니다. 내한 당시 콘서트도 갔을 정도로 한스 짐머의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탑건: 매버릭>과 <트론: 새로운 시작> OST의 짬뽕 느낌을 받았는데, 2023년을 배경으로 한 레이싱 영화에 걸맞는 사운드였다고 생각합니다.
제작진에 루이스 해밀턴 등 현직 레이서들이 다수 포함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레이싱 장면이 진짜 중계인지 영화인지 모를 정도로 박진감 넘칩니다. 실제 레이서들이 나오고, 실제 팀이 나오고, 실제 스폰서까지 모조리 실린 걸 보면서, 이제 현실 F1 영상을 보면 이제 영화같이 보일 지경입니다. 어딘가에 소니 헤이스가 달리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다만 영화에서 나오는 소니 헤이스의 변칙적인 행위들이 실제 F1에서는 매우 터부시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특히 고의로 사고를 내는 행위를 통해 이점을 가져가는 것이 F1 팬들에게 어떻게 보여졌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개연성과 현실 고증,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속편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미 서사는 완성이 된 것 같은데, 속편이 나온다면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팀워크" 장르와 브래드 피트는 무슨 관계일까요? <머니볼>을 인상깊게 보고 팀워크와 성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F1: 더무비>에서도 이렇게 저에게 깨달음을 주시니, 빵형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쓰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은 영화였습니다. 전투욕구를 비저닝하는 Plan C is for combat 장면이라거나, 온갖 센서와 데이터로 무장한 F1 팀에선 어떤 데이터 분석을 할까? 라거나, 매번 우승은 다른 팀이 차지하는 장면과 APX GP의 다음을 준비하는 희망찬 장면이라던가... 매번 영화 리뷰 쓸 때마다 주제 잡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진짜 만족한 고객은 높은 만족도 점수로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구매를 하는 행위가 고객 만족에 좀 더 부합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네. 저는 <F1: 더무비>를 재구매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돌비에서 다시 즐겨보려고 합니다. 돌비 사운드와 함께라면 4D가 필요 없습니다. 소리 울림이 좌석까지 쉐낏쉐낏 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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