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떠나는 여행의 묘미
오래 전부터 준비하는 여행은 그만큼 설렘도 길다. 한 4~5개월 전 쯤에 항공권을 예약하고 나면, 남은 기간동안에는 하루하루가 그저 두근거림의 연속이다. 수업을 듣다가도 여행지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는 건 예사고, 과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게 구글 맵스에 들어가서 여행지를 훔쳐보는 일이다. 하지만 일상에 지장이 생겨도 마냥 좋기만 하다. 지금 좀 뒤숭숭하지만 언젠가는 그곳에 있을 나를 상상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니까.
하지만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여행이 설렐 때도 있다. 예상치 못하게 내일 또는 다음 주에 어딘가를 가게 된다던지 하는 일이 생기면, 나같은 여행 종자들은 그마저도 설레어한다. 영화 「호빗: 뜻밖의 여정」에 나오는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배낭을 바리바리 싸들고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가는 주인공 빌보에게 동네 아저씨가 묻는다. 그리고 빌보가 대답한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낸 항공권 프로모션
10월의 어느 날, 가끔씩 오는 소비중독에 걸린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뭐 살게 없나 하고 이것저것 뒤지고 있었다. 그 때는, 괜찮은 옷은 없을까, 생필품 필요한 건 없나 하고 어플을 이것저것 둘러보는 게 취미 중 하나였으니까. 지마켓에도 별건 없군, 쿠팡도 별게 없네, 하면서 내 최애앱 중 하나인 티몬을 켰다. 오랜만에 혹시 괜찮은 딜 없나, 하고 해외여행 항목에 들어가는데, 어라? 간사이 왕복 13만원? 뭐야 이거...
여행에 있어서 예상치 못하게 지름신이 오면, 사실 두려움이 좀 앞선다. 이거 내가 혼자 가도 되나...? 하고 말이지. 저 항공권 프로모션을 발견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건, 학교 친구들에게 연락한 것이다. "야 오사카 왕복 13만원이야ㅋㅋㅋ 개꿀! 같이 ㄱㄱㄱ"라며 주위 친구들을 하나둘 꼬셔보기 시작한다. 역시나, 하나도 안 먹힌다. 문제는 목금토로 이어지는 날짜였다. 학기 중에 목요일 수업을 째고 여행을 떠날 용자가 많지는 않았으니까.
사실 나도 수업이 좀 부담되긴 했다. 보통은 주말에 과제를 몰아 하는 편이었고, 목요일 오후 늦게 수업이 하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뭐, 수업이 대순가? 수업은 일주일에 두번이나(...) 있지만, 이런 프로모션은 일년에도 몇 번 없는 행운이니까! 안 간다는 친구들은 이미 내 눈 밖에 있었다. 뭔가에 홀리듯이, 그렇게 바로 왕복 항공권을 결제해버렸다.
무작정 즐거웠다. 계획은 없었다.
출국 날짜는 3주 후였다. 사실 2박 3일 여행 준비야 하루정도 시간 내서 뚝딱 해버릴 수도 있는 거였는데, 중간고사를 끼고 과제다 공부다 이것저것 하다보니 어느 새 출국일이 훌쩍 다가와버렸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출국 전날까지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건, 매번 어느 정도라도 계획을 세우고 가는 나에게는 꽤나 치명적인 문제였다. 당장 정해진 건 숙소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분이 마냥 좋기는 했다. 무계획이 치명적이기는 했는데, 사실 그만큼 이것저것 하겠다는 욕심도 크지는 않아서 그랬나보다. 오사카는 전에 두세번 정도 가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뭘 하든 되겠지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마지막 오사카 여행이 5년 전이었다는 건 큰 함정이었지만, 저 근자감 덕분에 김해공항에 도착한 그 때 까지도 계획은 전무했다.
이것저것 다 빼고 걍 먹방여행으로
마지막 순간에 닥쳐서 "가서 뭐하지..." 라고 생각하던 그 때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일정이 짧을수록 절대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박 3일은 어차피 긴 시간도 아니었고, 그 짧은 시간동안 오사카를 전부 돌아본다는 건 꽤나 무모한 짓이다. 차라리 컨셉을 하나 잡고 그 테마에 집중하는 게 오히려 담백하다. 돌아올 때 '후회 없었어'라고 생각하기도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그래서 오사카에 걸맞는 테마를 하나하나 생각해봤다. 고풍스러운 건물이나 유적지는 사실 오사카보다는 교토, 나라에 가까운 컨셉이었고, 안타깝게도 교토까지 갈만큼 시간이 충분하지는 못했다. 오사카는 유적지 탐방보다도 오히려 음식이 유명한 곳이다. '천하의 부엌', '먹다가 망한다'는 수식어가 유명한 곳이 바로 오사카인데, 생각해보니 이전에 몇 번 오사카에 갔을 때도 맛있는 음식을 집중적으로 캐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 이번 여행은 먹방 여행이다!
간단한 여행 보고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나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총 경비는 한화 46만원 정도로 여태까지 다녔던 해외여행 중 가장 저렴하게 다녀온 여행이 되었다. 항공권과 숙박 가격이 매우 저렴했고, 현지에서 별다른 입장료나 교통비를 지불하지 않았던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아래는 핸드트립 앱을 이용해 정리한 여행 경비 목록 엑셀 파일이다. 막판에 지른 기념품 정도만 빼면, 40만원 정도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먹방 여행은 하루 세 끼 때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먹어서 망한다'가 어떤 것인지 보여줄 정도로 음식에 온 재산을 탕진할 정도가 되어야 진짜 먹방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2박 3일 간 거의 20가지에 가까운 음식을 먹은 것 같다. 간식 정도인 것도 있고, 정식으로 먹은 것도 모두 포함이다. 여행 경비 목록을 보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아래에 있는 구글 지도를 보면 다녀온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도 상세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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